(아주경제 조현미 기자) “외할머니는 담대한 여성이었습니다. 어려움 속에도 여유로움이 있었고, 어떤 상황에도 침착했지요. 제가 50·60대가 되면 당신과 같은 모습이길 바랐습니다”
정애리 회장은 전남 목포에 소재한 고아원 ‘공생원’을 운영했던 외할머니 윤학자 여사(1912~1968년)를 본인의 멘토로 소개했다.
3000명의 전쟁고아를 길러낸 윤 여사는 한국 고아의 어머니로 불린다. 윤 여사는 1912년 일본 시코쿠 지역 남부에 있는 고치(高知)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다. 일곱 살 때 조선총독부 직원인 아버지를 따라 목표에 왔다.
목포에서 고아들을 돌보던 일명 ‘거지대장’ 윤치호 전도사와 1938년 결혼해 공생원을 함께 운영했다. 정 회장의 외할아버지인 윤 전도사가 1951년 행방불명된 후 윤 여사는 홀로 공생원을 책임졌다.
외할머니는 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일을 삼갔다. 정작 손녀 보다 공생원 아이들을 더 보살폈다. 정 회장을 따로 챙기는 일은 없었다. 어린 정 회장은 당신 가족만이 모여 사는 생활을 바랐다.
동시에 외할머니처럼 살고 싶다는 꿈을 꿨다. 정 회장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분이자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이었다고 외할머니를 회고했다.
외할머니 같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소녀의 꿈은 인카스를 통해 현실이 됐다. 정 회장은 이 곳에서 외할머니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친부모와 헤어진 해외입양인에 대한 배려와 채움은 모두 외할머니에게서 배운 자세다. 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외할머니처럼 그 역시 해외입양인의 한국어 교육, 대학·대학원 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외할머니처럼 되는 것은 무의식 중에 나에게 각인된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지는 못했지만 외할머니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자 저의 영원한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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